UX 관점에서 다시 감성(Sensibility)을 바라보다

 
감성(sensibility)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관심을 받게 되었던 것도 벌써 20 여 년이 다 되어 갑니다. 당시 감성이라는 용어는 막연하게 ‘마음에 든다’거나 ‘갖고 싶다’ 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무엇일까를 찾고자 하는 데서 비롯되어 등장하였으며, 학문적 측면에서는 소위 인지(cognition)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등장하였으나, 감성에 인지적 측면이 배제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학계의 거두들 간에도 사적인 토론만이 있었을 뿐 심도 깊은 논의나 정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딱히 없었고 이런 상태에서 용어가 사용되어 왔습니다.
 

감성의 등장 배경

어쨌든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오던 개념인 인지, 상당히 유사한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정서(emotion)와는 별도로, 감성이라는 용어가 새롭게 필요했던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내놓는 것이 무수히 많아지고, 이에 따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환경 간의 관계 같은 다소 전통적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프로세스와는 다른, 사람과 제품(또는 서비스) 간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프로세스에 대한 지칭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새삼스레 이와 같은 프로세스에 대한 지칭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품의 보유 여부만으로 개인(또는 개인의 능력)을 표현할 수 있던 시대를 지나고,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면서 기술적 성능의 측면에서는 일정 수준을 확보한 제품을 너나 없이 구매할 수 있게 되자 다른 차별화 지점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를 어떤 식으로 구현하고 소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면서 그 과정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대상황적 분위기에 따라 새삼스레 디자인이 주목 받게 되고, 개성이 중요하다는 주장들이 등장하기도 했으나, 감성 그 자체에 대한 충분한 성찰이 없었기 때문에 감성이라는 용어는 마무리 장식 같은 미사여구로만 사용되어 온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겉보기 디자인에 신경을 쓰거나 다양한 색채를 선택지로 제공하는 식의, 고객의 선택 범위를 늘려주는 정도의 시도만을 한 채 감성 디자인을 했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들이 많았고, 이에 따라 감성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지기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성은 단순히 겉보기 디자인과 관련된 문제인 양 어설프게 다뤄져 오다가, 다시금 불붙은 최첨단 기술 경쟁 속에서 다시 중요도가 간과되거나, 사용자 경험이라는 표현 속에 뭉뚱그려짐으로써 묻히는 개념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성의 정의

그렇다면, 감성을 어떻게 규정하면 좋을까요? 오래 전부터 필자가 품어오던 생각을 한번 정리하여 감성이 무엇인지, 사용자 경험 속에서는 어떻게 자리할 수 있는지를 한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제품이든 사람이나 환경이든 우리는 1차적으로 감각(sensation)이라는 경험을 합니다. 감각이라는 것은 매우 순간적이지만 이것이 없다면 우리가 아는 것, 느끼는 것 등 그 어떤 것도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인간도 일종의 정보처리 기계와 같다는 관점에 따르면, 감각된 것은 취사 선택되고 정교화되는 지각(perception) 과정을 거쳐 복잡한 인지 과정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은 생각하고 기억하는 등의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즉, 감각이 없다면 고등 정신 과정의 시발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지적 흐름은 흔히 논리적인 과정이라 간주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정서는 이러한 인지 과정과 분리하여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정서와 인지를 분리하여 바라본다면 감성은 어느 쪽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까요? 굳이 이분법적 분류를 한다면, 감성은 감각으로부터 정서적 처리로 넘어가는 과정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는 것이 더 그럴 듯해 보입니다. 모든 정서적 경험이 비인지적 상태는 아니지만, 정서는 상대적으로 비인지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각이 시작됨과 거의 동시에 우리는 사물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질 수 있는데, 이때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며 즉각적인 상태를 감성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정서가 다분히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감성은 복잡한 프로세스 이전에 비교적 짧은 순간에 경험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감성을 언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10g의 어떤 사물에 대해 10g이라는 물리적 수치와는 별개로 들어보니 가볍다라고 느끼는 것, 이것이 감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때 감성은 그 사물이 가볍다라는 감각적 경험에 가까운 느낌에서부터 다루기 쉽다라는 조금 더 2차적 상태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 사물에 대해 행복이나 슬픔과 같은 고차적인 정서적 경험을 하려면, 사물과 얽힌 복잡한 경험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감성과 정서의 대략적 경계는 이와 같은 수준에서 정리될 수 있습니다. 한편, 아름답구나 하는 것은 것은 일반 감성 상태로 보아야 할까요? 감성을 넓게 잡으면 아름다움 같은 심미적 평가까지 고려해볼 수 있겠지만,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평가적인 측면을 포함하여 꽤 다양한 감성들을 포괄하기 때문에 이는 감성의 복합체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UX와 감성

사용자 경험(UX)이라는 용어가 사방에서 난무하는 이때, 왜 새삼 감성을 생각해보게 된 것일까요? 하루가 다르게 등장하는 수많은 기기와 그 기기들이 담고 있는 기능들은 언뜻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만큼 이해하거나 처리해야 할 것들 또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을 충분히 안전하게 지켜주지는 못했을지라도 원시 시대의 도구들은 특별히 사용법을 배울 필요가 없었음을 상기해보십시오. 무수히 많은 물건과 인공 환경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술의 발달이 무한해 보이는 것과 달리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정보가 많아지면 정보를 단순화시켜 처리하고 판단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잡한 많은 지식을 똑같은 수준에서 정교하게 처리하기보다는 특징적인 것에 주목하거나 일부만 대충 처리하고 그것을 토대로 많은 판단과 행위를 하며, 습득한 정보를 기계처럼 그대로 저장하기 보다는 단순한 인상으로 남겨 담아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람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상대에 대해 순하다와 같은 대강의 인상만을 담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평가는 눈이 처졌고 말이 느린 것 같은 아주 단편적인 경험을 토대로도, 그리고 단시간의 경험만으로도 쉽게 이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가 가진 매우 많은 특성들을 눈여겨보지도 않고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한 평가를 내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토대로 행동에 나서기도 합니다. 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까요?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 모두를 일일히 정확하게 파악할 만큼 충분히 많은 시간도, 여력도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물과 환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일들이 벌어집니다. 빨라진 기술 발달 속도 덕분에 많은 것들이 쉴새 없이 등장하는 오늘날의 환경에서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즉각적이고 순간적인 판단과 더불어 상당수의 제품들은 미처 스스로를 어필해보기도 전에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도록 만지고 써보고, 결국 사용법을 익히게 되면 장점을 알아줄 것이라 기대하기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하여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사용자 경험에 기반한 제품/서비스를 만든다고 할 때, 우리는 흔히 충분한 사용 경험을 전제로 하게 됩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제품/서비스를 사용해보기 이전에 사용을 해볼지 말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는 것, 그것이 사용자 경험 속에서 감성을 생각해야 할 이유입니다.
 

※작성: ThinkUser SNC컨설팅사업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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